제51회 입조심 귀조심
아무리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해도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입이 무겁다`는 표현은 필요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할말이 있어도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말로 인한 해프닝을 종종 겪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회사에서 여자 직원들을 부를 때면 미스 김이니 미스 박이니 해서 성씨 앞에 미스를 넣어 불렀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성춘향씨니 최명길씨니 해서 성명을 통째로 부르는 게 일반화되었는데 만약 다시 미스 어쩌구 했다가는 그녀에게 요절이 날 것이다.
호칭에서부터 이런 판에야 일상 대화에서 생각 없이 한 말이 부메랑처럼 되날아와 봉변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직원 하나와 내가 오간만에 전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을 만나 술을 한 잔 마셨는데 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 하나를 마치 안주 삼아 욕을 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둥, 그럴 수가 있느냐는 둥 하면서 패대기를 친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우리가 욕을 했던 장본인이 나를 좀 보자더니 “자네 어제 누구랑 술 마시며 내 욕을 했다면서?”하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 잠시 말문을 놓다가 “응, 뭐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하고 물으니 “다 아는 수가 있어. 이 사람아!”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다. 사실을 알아본 즉 전날 오랜만에 만났던 그 사람이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우리가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를 그대로 옮겼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이 다시 이 얘기를 욕먹은 장본인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 욕이 돌고 돌아 그에게 들어간 것이다.
직장에서나 대인관계에서 불평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동료들과 퇴근 후 자리를 같이 하면 주된 화제가 회사 얘기고 한참 대화를 하다 보면 남의 얘기를 입에 올리게 되는데, 확인되지 않거나 믿어지지 않는 말이 이때 나오게 된다. 말이란 옮겨질수록 변질되기 마련이어서 나중에는 전혀 엉뚱한 내용이 되기 쉽다. 누가 공금을 잃어버려서 제 돈으로 채워넣었다는 말이 몇 다리 건너가서는 공금 횡령으로 둔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옮겼다가 화제의 인물이 봉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러므로 직장 동료든 친구든 그에 관해 확실하지 않은 얘기는 듣지도 말고 옮기지도 말 일이다. “누가 그러는데 아무개가 뭐 어쨌다면서요?” 이런 식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도 나쁜 버릇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칭찬에는 인색한 반면 험담을 늘어놓기는 즐기는 편이다. 누가 한 사람을 욕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어 마침내는 그 사람을 인격도 모자라고 양심도 없는 비인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사람을 말하려거든 장점을 얘기하라. 그렇지 않으려거든 험담은 듣지도 말고 옮기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