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신혼여행 = 마지막 여행?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여행 중 으뜸이 바로 신혼여행이 아닐까? 승용차에 풍선 달고 꽃 달고 부모와 친지, 친구들의 축복 속에 공항으로 내달리는 그 기분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두둑한 주머니에 옆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꿈 같은 4박5일이 펼쳐질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그 순간은 모든 부부들이 꿈꾸는 최초의 행복이다. 그런데, 이 신혼여행을 무슨 마지막 여행이라도 되는 양 무리를 해서 떠나는 커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장남이 아니라면 혹은 돈 많은 집 자식이 아니라며 모든 부부들은 결혼과 동시에 전셋방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이 방은 남자가 마련하는 게 관례로 되어 있는데 집에서 한 1,2천 보조 받고 나머지 1,2천은 또 어찌어찌 해서 겨우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다.
여자는 적금 부어 마련한 돈에 부모로부터 `뜯어낸`(사실은 이 액수가 더 크다) 후원금으로 TV 사고 냉장고 사고, 밥통에 냄비에, 수저 사고 예단 사고 한없이 사들여댄다. 이러니 어지간한 사람은돈에 쪼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신혼여행도 해외로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결혼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나간다. 내가 결혼할 때는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제주도 갔다 오면 그걸로 땡이었는제 지금은 누가 사이판 갔다 왔다면 나는 하와이 가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누리고 살 수 있나. 이리저리 꿰맞추다 보면 계산이 안 나온다. 남들 다 가는데 평생에 한 번인데, 이래서 일단은 카드로 긋고 가는 것이다.
사실 신혼 초에는 돈 들어갈 구멍이 되게 많다. 시가 처가 인사 다니랴, 집들이도 이 팀 저 팀 줄줄이 해야지. 결혼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데서 돈 쓰게 된다. 맞벌이를 해도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닌 것이다. 여기에다가 신혼여행 갔다 온 거 청구서까지 날아오면 돌아버린다. 미혼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혼여행을 평생 마지막 갔다올 여행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랬다구 피끓는 나이에 좀 출혈을 해서라도 허니문 한 번 화끈하게 다녀오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당신이 시한부 인생인가. 길게 내다보고 살자.
내가 아는 여자 하나는 사이판 갔다가 볼 게 없어 호텔방에서 죽치며 비디오 테이프만 보다 왔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확이하러 가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비장한 여행이다. 이걸 지금은 (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때려놀러 가는 걸로 아니 돈타령이 안 나올 수 없다. 관광 말고도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돈도 안 들고 말이야. 나이 먹어서, 아이들 하고 가는 여행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