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회 불륜은 없다
예전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부남 유부녀가 눈이 맞아서 새삼스럽게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얘기다. 30대의 사랑을 산뜻하고 감각적으로 그린 데다 현실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라는 의견도 있지만, 불륜을 미화하고 외도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난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과연 불륜이란 무엇인가.
윤리에 어긋나는 게 불륜이다. 우리가 아는 불륜의 범주는 막연하기 이를 데 없다. 통상적으로 뭔가 어색하고 상식에 어긋나 보이면 우린 그걸 불륜이라고 부른다. 임자 없는 처녀 총각이야 만나서 무슨 짓을 해도 그건 사랑놀음이지 불륜은 아니다. 그러나 임자 있는 놈이 임자 없는 여자 만나고 돌아다닌다거나 임자 있는 여자가 임자 없는 몸 만나서 돌아다녀도 우리는 손가락질을 한다. 임자 있는 남녀가 만나 그러는 건 더 하고.
그런데 우리는 왜 불륜 이야기에 빠져드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나나 당신이나 우리는 모두 불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괜찮은 남자가 하나 있다. 직장 동료라도 상관 없고 그저 아는 사람, 점심 때마다 혹은 출근할 때마다 만나는 사람이라도 관계 없다. 나는 그 남자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마주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꾸 생각이 나서 심란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유부남이다. 그럼 깨끗이 포기해야 하나? 아, 염병! 지지리 복도 없지 하필이면 유부남이람, 이러고 말아야 할까.
그럴 수 있으면 좋다. 어쩌면 그러는 것이 당연하고, 당사자도 머리 복잡할 일 없으니 좋지 않은가. 그러나 사랑하고픈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평생 단 한번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만 유부남이라는 이유로 포기해 버린다면 삶의 의미는 그 가치의 폭락을 면치 못하리라.
윤리는 사회적이다. 개인적으로 윤리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 앞에서 개인적으로 무너진 윤리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라. 사랑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지만 그건 일시적이며 자기 도취일 뿐이다. 사랑에도 냉정한 이성은 힘을 발휘한다.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에 진지해질 수 있다면 당신은 그와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질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랑은 환상이다. 처음에는 그걸 모른다. 그를 직접 만나서 천천히 들여다보면 당신의 느낌과 그가 다르다는걸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바랐던 이상형이라도 그와 당신은 관습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랑의 짜릿함만 취하라. 그리고 물러서서 그 슬픔을 간직하고 사는 것도 나
쁘지 않다. 그걸 누가 불륜이라고 말하면 뺨을 후려 갈겨라.
나는 지금도 더러 만나는 여자를 갖고 있다. 애가 둘이나 딸린 자식이 마누라 놔두고 그 무슨 꼴이냐고 주변에서는 그러는데 그거야 말로 모르는 소리이다. 어차피 이성끼리는 친구가 될 수 없다지만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느껴도 그저 그뿐, 내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는 걸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들도 안다.
그래도 나와 그녀들은 같이 만나 시시덕거리며 즐겁기만 하다. 좌우지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이렇게 만나므로 더 무얼 바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