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여자가 모르는 99가지

제97회 크고 맛있는 것은 없다

자이야 2012. 4. 22. 15:13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거기에서는 뭐든지 다  크다고 한다. 스테이크가 우리나라 파전만 하고  햄버거는 무지막지하게 커서 먹성 좋은 사람도 절반 이상을 먹기가 버겁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콜라 컵은 , 좀 거짓말 보태서, 작은 양동이 크기란다.  늙은 호박만한 복숭아도 있다는 설명에는 기가 질린다. 짬뽕도 세숫대야만한 그릇에 담아 주어서 혼자서는 도저히 못 먹는다나.


  물론 우리나라에도 큰 것은 있다. 이영자  얼굴만한 뻥튀기, 평양식 왕만두, 어린애 머리통만한 나주의  신고 배, 지금은 어떤 중국집에서도 만들어  팔지 않는 공갈빵이 그것이다.


  ‘크다’라는 말 속에는  허구와 과장, 고소(苦笑)가 깃들어  있다. ‘크다’는 부피를 말함이니 ‘많다’는 말과도 통한다.  큰 것은 보는 이에게 기대를 품게 한다.  대상의 이미지를 강화시켜 작았을 때의 그것보다 더 맛있거나 더 강하거나 더 오래갈 듯한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크고 맛있거나, 강하거나 더 오래가는 것은 거의 없다.


  유전자 조작으로 앞으로는  슈퍼 소, 슈퍼 닭이 나와 크면서도  맛은 끝내주는 고기를 우리가  먹게 될지는 모른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변강쇠, 톰 크루즈의 유전자를 결합시켜 미남이면서도 근육질의  몸매에 여자를 죽여 주는 남자가 나타날지 누가 아냐.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슈퍼 닭이 아무리 맛있어도  나라면 토종닭을 먹을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아.변.톰이 아무리 끝내줘도 좀 시원치는 않지만 평범한 우리 남자를 선택하겠다.  맛에도 한계 효용의  법칙은 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산해진미도  눈에 질리게 퍼안기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처럼 좋은 것도 당사자에게 적당해야 맛이 나고 흥이 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큰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남으면 두었다 먹지!”
  “일단 챙기고 보는 거야.”
  “작은 것보다 낫지 않겠어?”


  큰 것 쫓아다니다가 큰코  다친다. 한 건 크게 올려서 인생을  바꿔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신세를 망친다.  큰 것은 큰 사람에게나 어울린다. 소인배가 대의를 꿈꾼다고 일이 성사될 것인가. 그는 결국 쓴 웃음을 짓고 물러날 뿐이다.  음식도 조금 먹을 때 맛이 있듯, 욕심도 작아야 삶에 탈이 없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소박하게 살자. 방방  뜨고 살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세상, 나까지 크고 맛있는 것 따라다니다가 엎어지면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