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진정한 베스트 셀러 읽기
PC통신이 유행하고 백과사전도 CD롬으로 나오는 시대에서도 활자매체인 책
은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종이에 인쇄한 이 특별한 물건은 플
러그를 꽂지 않아도 언제나 볼 수 있으며 눈이 부시지도 않고 값도 비싸지 않아
생일선물이 마땅치 않을 때는 언제나 누구에게라도 안길 수 있는 고상한 것이
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사실 미혼여성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고서를 제외하고는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최인호를 굶지 않게 해주고 있으며 이
문열을 재벌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 안에 나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책을 잘 안 사는 편이다. 책을 쓰는 놈이 책을 잘 안 산다니 한심한 노
릇이지만 다 까닭이 있다. 꼭 사야 할 책이 있으면 사기는 산다. 대대손손이 물
려줄 만한 책이라면 당연히 사야지.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라면,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책방에 가서 다 보고온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단한 소설가라는 소리를 듣고 한 수
배워야겠다는 마음에 서점에 가서 그의 책을 펴들었는데 이게 영 아니올시다여
서 그냥 온 일이 있다.
책을 제대로 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책에 관한 정보라야 신문, 잡지에
나는 신간안내 기사가 고작이고 그렇다고 해서 도서전문지를 구입해 봐가며 책
을 사는 정성을 들이기도 어려운 게 일반 독자들의 심리다.
그럼 가장 손쉬운 책 고르기는 아무래도 광고가 아닐까? 광고를 불나게 때리
는 책 제목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입력되어서 어쩌다 서점에 가면 저도 모르
게 손이 가기 마련이다.
수천, 수만 권이 진열된 책방에서 일일이 골라가며 책 찾아보기는 사실상 불
가능하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집어들어 조금 읽다가 내키면 사고 아니면 마는
게 대부분인데 이때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왜 잘 나가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또 남들과 얘기할 때도 “어,
너도 봤냐? 나도 봤다.”뭐 이렇게 말이 되니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쩌다 책을 살 경우라도 베스트셀러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좋
은 책과 잘 팔리는 책은 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요즘 잘 팔리는 책들을 보노
라면 이게 만화인지 소설인지 알 수가 없고 이걸 과연 이 다음에 내 자식에게까
지 물려 읽힐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라고 다 쓰레기는 아니다. 정말 좋은 책이 왕창 나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소원하는 바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은 열이면 아홉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
어쓰고 한구석에서 몇 달 퍼질러 있다가 반품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대신 광
고를 빵빵 때린 쓰레기는 ‘베스트셀러’라는 이름 아래 엄청나게 나간다. 내가
베스트셀러를 읽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걸 읽으니 차라리 고전을 읽자. 재미는 없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 좀 읽고 ‘춘향전’이나 ‘홍길동전’도 원본을 한번 읽어두자. 이런 책들
이야말로 마음의 양식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