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ners vill 자세히보기

여행기/자야의 여행기

충주건대원룸]율곡 이이선생을 찾아뵌 위너스빌

자이야 2014. 7. 8. 08:33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로 선대의 세거지인 파주시 파평면에서 성장 하였고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淑獻) 호는 석담(石潭), 우재(愚齋), 본관은 덕수(德水), 판관 의석의 증손이고, 사헌부 감찰 원수(元秀)의 아들로 1536년 (중종 31) 태어났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어느븐인지 쉽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호가 율곡(栗谷)이고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라고 하면 바로 이이(李珥)선생을 말하는 구나 라고 누구나 알 것이다.

 

   율곡선생과 그의 모친 신사임당은 그만큼 한국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 이번에 율곡선생이 성장하였으며 그의 묘소와 선생을 기리는 자운 서원이 있는 파주를 다녀왔다.

 

 

   이이선생 유적지에는 선생의 부친 내외분 묘 선생의 묘를 포함한 17분의 가족 묘가 있고 자운 서원, 율곡 기념관, 신도비 등이 있다.

 

   위로부터 여현문, 이이선생과 부인묘, 가족묘지이다. 가족 묘지는 아래부터 율곡선생 장남과 그의 부인, 율곡선생 부친과 그의 부인 신사임당, 율곡선생의 형님과 그의 부인, 가장 위가 율곡선생과 그의 부인 묘소이다.

 

 

 

 

거목이다. 이는 서원 창건 시기보다 약간 얖서는 수령으로 서원이 대원군에의하여 철폐되고 한국 전쟁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1969년에 복원되고 1973년에 문을 다시 짓고 정화 하였지만 두 그루의 거목은 그자리를 굳건히 지켜 온것이다.

 

 

 

 

묘정비와 율곡선생 사당이다. 사당 왼쪽에는 제를 지내기 전에 손을 씻는 곳과 오른쪽에는 축문을 사르는 곳이 있다.

 

 

 

   율곡 기념관과 자운 서원의 모습이다. 넓은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고 깨끗하게 관리 되고 있었다. 율곡 기념관에는 선생의 업적에 비교하여 전시물은 별로 볼만한 것이 없었다.

 

 

 

   신도비와 그 비문의 일부이다. 율곡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문은 이항복이

지었다고 한다. 비문은 아직까지는또렷하나 풍화로 글씨 구분이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