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경상도에서 내륙 깊숙히 들어 가려면 차령 산맥이 험준하게 가리고 있어서 전라도로 돌아가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한다. 삼국시대에 경상도쪽에 자리잡은 신라는 백제땅으로 우회하기 어려워서 험준한 차영산맥을 넘지 못하고 갇혀살다 시피 했고 처음 산맥을 넘는 길을 만들었을때 그 날을 기록할 만클 길을 만드는데 큰 공사 였던 것이다. 길을 냈다고 해서 지금의 도로공사를 생각하면 안된다. 지금 하늘재 길은 현대 장비로 다듬어놓은 길이고 중간에 남아있는 옛길로 가보면 한사람 지나다닐 정도의 오솔길이다. 이러한 길을 지나는데 커다란 산짐승과 산적은 거의 필수적으로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충주 미륵세계사 옆에는 원터가 남아있다. 주춧돌만 남아있는데 건물의 모양이 "ㅁ"자 형태다. 산적과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