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양떼 목장에서 끝도 없는 눈을 구경하고 돌아서서 가까이 있는 월정사로 향했다.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입장료에 많은 실망을 한다. 특히 입장료를 징수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주 도도하여 들어 가면서 기분이 상한다. 무언가 문제가 있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간이 많으면 입장료 징수하는 곳앞에 주차 하고 걸어 가면 좋은텐데 주차비까지 지불하고 차를 타고 입구까지 갔다. 입구에 웅장한 문이 반겨 주고 있다.
웅장함을 뒤로 하고 들어가니 왼쪽에 불교 박물관이 있어 들어갔는데 안타깝게 사진 촬영 금지라고 한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은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서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나오니 바로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은 팔각 석탑으로 특이 한 것은 훌륭한 차림을 한 보살이 기도하는 모습의 석상이 있다는 것이다.
양떼 목장에서는 눈이 녹지 않아 눈밭을 걸어 다녔는데 월정사에 오니 눈이 녹아 바닥에 물이 반 이었다.
대웅전을 돌아 가니 스님이 기거하는 듯한 한옥이 고즈녁히 자리 하고 있었다. 단청을 하지 않아 멋스러움은 없었으나 한옥의 단아하고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의문인 것은 사찰안에 스님의 공간인데 굳이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만든 사유를 모르겠다. 여기는 사찰내에서 특별한 공간인가? 월정사 곳곳에서 스님의 거주 공간을 공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월정사가 엄청나게 커지는 모양이다.
월정사를 뒤로 하고 초등학교떼 반공 교육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승복 추모관이 근처에 있어 달려 갔다. 이미 시간이 많이 되어 안에 머무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날씨 때문인지 시간 때문인지 방문객이 많지 않아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지금은 반공의 개념이 많이 약해졌지만 우리가 반공을 배울때는 이승복은 반공 역사의 영웅 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공산당이 무었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저 어른이 공산당은 나쁜 것이고 우리의 적이다라는 반복적인 주입 교육의 값진 결과이다. 총칼든 무장 공비 앞에 무서워서 말도 하지 못할 상황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외칠수 있었단 말인가? 그때는 그러한 반공 교육이 잘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승복군의 경우를 볼때 결코 잘 한 것같지 않아 보인다.
위의 사진은 이승복군의 생가를 재현 한 것이라 한다. 오른쪽의 하얀 방문 2개가 방이고 그옆이 부엌 그리고 부엌앞에는 외양간이다. 그 시절에 이정도 살면 부르조아 였단 말인가? 공비는 왜 죄없는 어린이를 죽였을까? 철없는 소리로 치부하고 웃고 넘어갈 수는 없었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이승복 추모관에 있는 안보 전시물이다. 어떻하다 한 민족이 정치적으로 둘로 쪼개져서 이대올로기가 뭔지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 아이가 처참하게 희생 되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을 비극적인 민족의 운명으로만 치부해야 할 것인지...
안타까운 것은 현재도 생존해 있는 이승복의 아버지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온정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하고 여러차례 칼침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형도 비슷한 생활을 한다고 한다. 한 가정이 이렇듯 완벽하게파괴 되어버린 것을 누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충주로 돌아 오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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