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발 여수 착 한진고속버스 앞.
“아니, 이 짜식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출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후배 자식은 도무지 나타날 낌새가 없었다. 버스는 떠나려고 비실비실 후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후배와 둘이 떠나기로 했던 여행은 나 홀로 여행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와서 들으니 짜식은 그 시간에 퍼질러 자고 있었다나. 어쨌든 나는 혼자서 여수에 떨어져 다시 연안부두로 가서는 늦은 점심을 먹고 똑딱선을 탔다. 짜식에게 주워들은 정보를 머리 속으로 굴리며 상주에서 내리면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사람도 거의 없고, 물이 맑은데다 밤에 달이라도 뜨면 경치 죽인다구요. 아직 개발이 안돼서 그래요.”
그래 넌 나한테 죽었다.
짜식의 말마따나 상주해수욕장에는 한여름인데도 사람이 드물었다. 대학생 몇 팀이 백사장에 텐트를 쳐놓고 한창 배구를 하고 있었다. 민박을 잡아놓고 나선 나는 가게 앞 파라솔 밑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멀쩡한 놈이 청승을 떨고 있으려니 또래의 대학생 하나가 다가와 혼자 오셨냐고 묻고는 맥없이 사라져갔다. 나는 수영도 하지 않고 청정해역이라는 남해만 실컷 바라보다 돌아왔다. 오자마자 짜식을 죽지 않을 만큼 팬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득한 옛날의 추억이다.
여행이 사람의 마음을 살찌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말이 없더라도 여행은 우리를 철학자로 만든다. 인생도 하나의 여행이니까. 일상에서 벗어나 가능하다면 자주 여행하는 건 보약을 마시는 것보다 낫다. 보약이 뭔가. 신체가 허약하면 달여 마시는 게 보약이다. 마음이 허한 데 여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그러나 여행에도 격이 있다. 관광지에 우르르 몰려가 때려 마시고 난리치다 오는 건 여행이 아니다. 멀리 동남아나 유럽으로 가는 배낭여행도 좋으나 그건 적금 부어서 가는 것이니 논외로 치고 내가 말하는 건 `작은 여행 만들기`다. 무조건 멀리 가야 여행이 아니다. 부담 없이 아무 대고 생각나면 혼자, 아니면 둘이 훌쩍 갔다오는 여행이 훨씬 즐겁다. 성남 모란시장에 가 온종일 구경하다 오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고 춘천 소양호에 가서 배 타고 청평사 구경하고 오는 것도 당일치기지만 훌륭한 여행이다.
여행은 여럿이 몰려다니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여럿이 가면 재미는 있겠지만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어서 웃고 떠들었던 기억밖에는 남는 게 없다. 그래서야 마음의 살이 찌겠는가? 혼자서 가라. 혼자 가야 호젓하고 또 혼자 있는 시간도 가져봐야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과 함께 나를 찾는 시간이야말로 돌아올 때 흐뭇한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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