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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여자가 모르는 99가지

제48회 불교란 무었인가?

자이야 2011. 9. 23. 21:55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보면 경허 스님 얘기가 주를 이룬다. 머리를 깍지 않고 출가한 중,  숱한 기행으로 우리 불교를 망친 중으로  기록되는 이 대선사는 선종인 조계종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꼽힌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타인 셈이다.


  나는 10년 전만 해도 불교에  대해 아는 거라곤 만해 한용운이나 석보상절 교과서에 나오는 김동리의 (등신불) 정도가 고작이었다.   불교 하면 우리들은  웬지 낯설다. 머리를 박박  깎은 중의 모습도, 그가 입은 먹물옷도, 목탁 소리도  가깝게 느껴지기 보다는 좀 거부감이 들고  하여간 선뜻 다가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없다.


  나도 처음에 그랬다.  절이라면 할머니나 아줌마들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생각에 고리타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취직한 곳이 말하자면 절 비슷한 곳이었다.  면접 볼 때까지는 까맣게 몰랐는데 불교재단인  이 회사는 회의를 법당에서 하고 내가 보는 원고도 맨 불교 얘기투성이였던 거다.


  나는 “아이고, 내가 가다가다 별난  회사를 다 다니는구나. 웬 불교? 이거 다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되겠지에 꾸역꾸역 다녔는데 한 일 년 다니다보니 슬슬 불교가 뭔지 알게 됐다.


  출판부에서 잡지 편집부로 자리를  옮겨선 이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고승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고 출판부에서 펴낸 책도 뒤적거려봤다. 그렇게  해서 중이라는 말이 사부대중 (비구, 비구나, 남녀  불교신도)의 줄임말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뭔 소린가도 알게 되었다.


  불교는 마치 바다와  같은 종교다. 그 넓이와 깊이와 헤아려지지  않는 바다처럼 불교는 막막한  철학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불교처럼 간단한  종교도 없다.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으니 자신  속의 부처를 찾으려면 부지런히 마음을 닦으라는 것이다. 부처란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난 완벽한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성철 스님은 다들 알것이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살아있는 신화로 계시다가 몇 년 전에 가신 분.  TV에서 중계방송까지 하고 국장을 방불케 한  장례행렬을 우리는 다 보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마음 심자 하나가 팔만대장경을 버틴다고. 이 말은 마음만 제대로 닦으면 팔만대장경이 다 소용없다는 뜻이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다. 신이 내 마음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가 자기 마음을 꾸준히 정화해 나가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나는 누구며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하는 것.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히 그대로 머무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불교다. 좀 어려운가?


  불교는 기본적으로 사람 등 모든 존재가 나고 죽음을 되풀이한다는 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라는 말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생사윤회는  서양의 학자들이 최면을 통한 과거 회귀실험을  통해 이미 증명하고 있다.


  무작위로 선택한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계속 과거를 기억하게 했더니 유아기를 지나 그 너머의  전생을 말하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에  관한 책이 시중에 나와 있으니 궁금하면 사서 보라.  중들이 머리 깎고 참선을 하는  이유도 이 윤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기 위함이다. 부처가 되는 데는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일부 땡중들이  신문에 관상 봐준다고 광고내는 것도 이 과정의  극히 일부의 위력을 갖고 돈 벌겠다는 수작이
다.


  도를 좀 닦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사람을 보면 그의 앞날이나 지나간 날이 보인다고 했다.  불가에서는 수행 중에 일어나는 이 신통력을  극히 경계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교만할까 두려워해서이다.  내가 만나본 어느  고승은 참선을 오래 한 선승이었는데 그는 산에  앉아서도 세상 일이 죄다 눈에 보이더라는 말도 했다.


  좌우간, 불교는 우리가 한번  빠져볼 만한 종교라고 나는 권한다. 우선 깊이가 있고 조금 공부하다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중들의 겉모습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선입견이나 편견은 일단 버리고 가까운 사찰에 가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보라.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절간에서는 신도들더러 나오라, 나오지 말라 소리를  안 한다.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그만이라는 게 중들의 심산이다. 그러니 찾는 사람은 부담이 없어 좋다.


  하나 더. 절에서는  때가 되면 온 사람  누구에게나 밥을 준다. 공양을 한다고 말하는데 중들은 따로 먹는 방이  있고 일반 신도들도 별도의 방이 있으므로 거기 대강 끼어 앉아 먹어라. 절밥은 먹을 만하다.